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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

클럽하우스를 그만둔 이유 (+ 초대장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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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클럽하우스가 한창 핫하게 떴을 때, 14년째 아이폰 유저인 나 또한 초대장을 받아 그 광풍에 참여했었다. 2주간 매일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클럽하우스에 들어가고, 여러 방을 정처 없이 헤매기도 하고, 내가 하고 있는 본업과 전문분야 방에 들어가서 2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조언과 정보를 나누기도 했다. 그때는 마치 클럽하우스를 하지 않는 사람은 뭔가 소외된 듯한 느낌도 들었고, 초대장이 개당 2-3만 원이라는 가격까지 형성되었다고 한다. (주변에 몇 개 초대장을 뿌리고도, 여전히 내게는 6개나 남아있다.) 

 

처음에 클럽하우스가 재미있었던 것은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첫날 강하게 든 생각은, '아, 나 그동안 외로웠나?'였다. 클럽하우스의 방을 전전하다보면, 진정한 의미의 소통 - 내 이야기를 하고, 남의 이야기도 듣고 - 을 원하는 사람들보다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너무나 많다. 듣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크게 상관없다. 그저 내 말을 하고, 내 말에 누군가가 반응해주길 바라는 이들이 많았다. 끊임없이 새로운 방에 들어가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자기소개를 하고,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유명인이 있는 방 - 노홍철, 박중훈, 손미나 아나운서, 현진영 등 - 에 가 보면 새벽 3-4시까지도 수백 명이 손을 올리고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유명인과 말 한번 해보려고. 

 

외로운 사람들 다음으로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프리랜서들이 모여서 코로나 시대의 생존을 고민하는 곳이나, 브런치에서 성공적인 작가들이 모여서 브런치 새내기들을 위해서 정보를 제공하는 곳들은 차라리 건설적이었다. 물론 스피커로 올라오는 사람의 수준을 컨트롤하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공감을 얻지 못하는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들이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혼자 시간을 독차지하는 이들도 있지만, 모두가 평등하게 올라오는 플랫폼에서 어느 정도는 감수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다. 자신이 하는 프로젝트, 연구, 상품, 업체를 홍보하려는 이들도 굉장히 많았다. 클럽하우스가 일종의 홍보의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클럽하우스에서는 소위 전문가가 한다는 말 너무 믿지 않아야겠다는 말을 했다. 기록에 남는 것도 아니고, 증빙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일방적으로 그냥 말하는 건데, 거기에 그 사람의 credential (경력이나 학력)이 섞이면 굉장한 지혜나 직관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다른 전문가가 보면 전혀 틀린 말인데도 말이다. 남편 동료 중 한명이 클럽하우스에 대해서 이렇게 평했단다: "클럽하우스 해보고 나의 가면 증후군이 치유받았다"라고. 가면 증후군, imposter syndrome, 이란 사실 그럴만한 실력이 안되는데 스스로 내가 운빨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고 믿는 사람들이 내 가면이 벗겨져서 나의 초라한 민낯이 드러나면 어쩌지?라고 불안해하는 마음을 칭한다.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대개 본인의 성취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이런 불안감을 갖고 있다. 그분도 역시 자기가 이룬 것들이 순전히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는 가면 증후군을 겪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클럽하우스에 가 보니, 자기보다 덜 연구하고 경력이 짧은 이들도 엄청난 전문가인 것처럼 말하는 경우들을 너무 많이 봤다고 한다. '아 그럼 나 정도면,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보다' 했단다. 게다가 다른 목적을 가진 사짜들도 슬그머니 보인다. 조금 있으면 클럽하우스에서 데이트 사기당했다는 뉴스도 올라올 것 같다. 

 

난 한동안은 여러 방을 정처없이 헤매다가, 한 방에 정착했다. 나이 때도 비슷하고, 어떤 목적을 갖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그저 소통하려는 이들. 치열한 하루의 끝을 소소한 수다로 마무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방이었다. 모처럼 좋은 분들을 만나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수다라는 게 그렇지만, 한번 시작하면 특별한 이야기도 없이 몇 시간씩 계속되기 마련이다. 한국 시간으로 퇴근 후 들어오신 분들도 계시지만, 미국에 있는 나에게는 눈 뜨자마자 클럽하우스에 들어가면 오전 시간을 통으로 날리는 일이 많아서 요즘은 자주 안 들어가게 된다.

 

외롭다면 클럽하우스도 좋다. 너무 빠지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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