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을 맞고 돌아오는 길이다. 내가 맞은 백신은 모더나 (Moderna) 다. 아직 우선 접종 자격은 없으나, 어제 갑자기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남쪽 동네에 자리가 많이 남았다고 접종 자격과 무관하게 접종이 가능하다고 해서 오전 11시 타임으로 예약을 하고 다녀왔다. 내가 간 곳은 자원 소방센터(?) - 직업 소방관 말고 자원해서 소방수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모이는 곳인가 보다. 온라인으로 예약할 때는 10분 단위로 많은 자리가 남아 있었다. 미리 양식을 작성해야 했는데 여기에는 이름 생년월일 그리고 의료보험 정보가 필요했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 백신 접종은 완전히 공짜이지만, 행정이나 접종인력에 따라서는 의료보험사에 소액 청구되는 (아마 정부에게 재청구하겠지만) 경우도 있다고 했다. 대신 의료 보험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는 주민등록 번호를 넣으면 정부에서 부담한다고 했다.
도착해 보니 차가 200대 정도 주차되어 있어서 조금 혼잡스러웠다. 접종을 기다리는 사람은 내 앞에 30명 정도 있었다. (주차되어 있던 차들의 주인은 대부분은 봉사자인 듯) 자원봉사하시는 분 말씀에 의하면 10분 전만 해도 100명 넘게 줄 섰단다. 어차피 그래도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무척 빠르게 진행되어 시간이 오래 차이 나진 않았을 것 같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길을 안내하고, 주사를 놔주고 있었다. 맨 처음에 어떤 봉사자인 할아버지가 수천 명의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아왔다는 표시를 해줬다. 그가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11시 예약 박 xx' 정도였다. 이후 준비해 온 양식과 신분증, 의료 보험 카드 사본을 내자 어디에 줄을 서면 되는지, 다음 어느 테이블로 가야 할지를 알려줬다. 내가 낸 서류를 받기는 했지만 확인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 차례가 되자마자 5초도 안되어 자리가 났고, 한 테이블에 앉아서 주사를 맞았다.
알코올 솜을 문지르고 신기하게 생긴 동그라미 밴드를 먼저 붙인 후 그 위에 접종을 했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오늘 팔이 아플 수 있으니 오늘과 내일 물을 많이 마시라고 이야기 듣고, 15분 동안 앉아 있다가 별 문제없으면 가도 좋다고 이야기 들었다. 접종 증명 카드를 한 장 줬는데 뒷면에는 5/4일이 두 번째 접종 날짜이며, 같은 시간에 오면 된다고 했다. 접종 증명 카드에는 이름조차 적혀 있지 않아서, 요즘 가짜 접종 증명서에 대한 우려가 왜 나오는지 알겠구나 싶었다. 접종을 맞고 싶지 않지만 급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 암시장에서 거래될지도 모르겠다. 접종 후 기다리는 15분을 제외하고 내가 그 건물에 들어가서 접종을 완료하고 접종 증명 카드를 받기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동시에 20명 이상이 주사를 맞고 있었으니, 적어도 천명이 오늘 이 곳에서 주사를 맞을 것이다.
3시간이 지났는데 아직은 전혀 아프지 않다. 주사 맞은 쪽 팔을 들면 맞은 데가 여기구나, 하는 정도. 물론 혹시 부작용이 느껴지거나 하면 여기에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참고로 아는 의사 말에 의하면 모더나의 백신 양이 화이자의 3배라서 좀 더 세고 더 아플 수 있다고 한다. 화이자 백신을 맞은 남편은 24시간쯤 지나서 팔을 들기도 힘들 정도의 근육통을 느꼈는데, 내일쯤 되면 나도 뭔가 오려나. 1차 맞고 심한 부작용 느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어서, 2차 때 별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5월 4일에 2차 코로나 백신을 맞고 한 달 반쯤 지나 한국에 가면 조금은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안전하리라 믿는다.
업데이트) 주사를 맞은 당일날은 팔만 아프고 괜찮았는데, 다음날 오후부터 두통이 생겼다. 물론 팔도 들기 어려울 정도로 아프고, 스치기만 해도 두들겨 맞은 것 같았는데 두통이 더 고통스러웠다. 살면서 두통은 꽤 자주 겪는 증상이지만, 이건 평소 두통과는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피로도 있었다. 타이레놀 두 알을 털어 넣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주사 맞은 지 사흘째 되니 두통은 사라졌고, 주사 맞은 부위도 훨씬 나아졌고, 괜히 피곤했다. 나흘째 된 오늘은 훨씬 가볍다. 나와 같은 날, 같은 모더나를 맞은 아는 언니(45세)와 그녀의 대학생 딸은 둘째 날 하루 종일 독감 앓듯이 아팠다고 한다. 다행히 사흘째부터 나아졌다고 한다.
요즘 미국에 아시안 증오도 총기난사도 날로 심해지고 있어서 참 어쩌다 미국이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싶지만, 그래도 미국에 아직 원칙과 신뢰가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을 보면 개발도, 배포도 속도가 관건이다보니 사실 접종 자격에 대해서 아주 디테일하게 정해지지 못했고 현장에서 제대로 확인할 방법도 없다. 자격이 되지 않지만 정 맞고 싶다면 맞을 수 있는 방법은 다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더 연약한 사람, 더 위험한 사람, 더 급한 사람들이 먼저 맞아야 한다는 사회의 원칙을 믿기 때문이다. 미국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많지만, 고지식할 정도의 이러한 원칙주의와 신뢰가 오랫동안 지켜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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